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고현 남부 지진 (문단 편집) == 피해 == || [youtube(R-BvFxmbt1E)] || || 어느 개인이 지진 이후 캠코더로 직접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 || [[고베시|고베]]뿐만 아니라 [[오사카부|오사카]][* 오사카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했다. 고베만큼은 아니지만 당시 최대진도 4를 기록했다.]와 [[교토부|교토]][* 이쪽은 오사카보다 더 강한 최대진도 '''5'''를 기록했다.]까지도 피해가 번졌기 때문에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라고도 하며 일본 지진 사상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두 번째로 강력했던 규모 7.3, [[진도(지진)|진도]] 7[* 1949년에 진도 7이 새로 설정된 후 사상 처음으로 기록된 격진이다.]의 대지진이자 사망자 6,300여 명, 총 피해액 1,970억 달러[* 1995년 기준. 2020년 환율 적용 시 '''3,298억 달러'''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 대지진]] 다음으로 가장 피해액이 높은 자연재해다.[[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disasters_by_cost|#]]]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큰 피해를 입힌 지진 중 하나다. 이 지진으로 인해 잘 나가던 항구 고베는 일본에서도 최고의 부채를 안고 가는 도시로 몰락하고 말았다. 당시까지 고베는 [[홍콩]]과 함께 동아시아 해운의 양대 허브항으로 군림하고 있었지만 시설 포화와 이용료 상승의 와중에 대지진까지 터지면서 고베항은 엄청난 타격을 입고 허브항의 지위를 한국의 [[부산항]]에 넘겨주고 말았다. 부산항이 세계 3위 물동량의 항구로 성장한 것도 이 지진 직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진 이후 늑장 대응 문제가 불거졌다고는 하더라도 [[환태평양 조산대|일본은 애초에 지진이 빈번한 나라라서]] 다른 [[필리핀|개발]][[인도네시아|도상]][[멕시코|국들]]과는 달리 나름대로 지진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위아래로 흔들리는 직하형 지진[* 판과 판끼리의 충돌 때문이 아니라 활성단층을 따라 일어나는 지진. 일본의 경우 판이 위치한 곳은 도심과 먼 바다이며(단층은 내륙) 진원지가 지표면으로부터 20km 미만의 얕은 곳에 위치한다.] 특성상 진앙지가 도심에서 비교적 가까웠다는 점이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날 밤 몇 차례의 미진이 관측되기는 했지만 예측하지는 못했는데 진앙지가 고베 남서쪽에 있는 [[아와지시마|아와지 섬]]의 활성 단층이었고 아와지 섬의 단층과 고베의 단층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 때문에 아와지 섬에서 일어난 지진이 단층을 타고 고베로 전달되어 대지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거기다 고베는 400년 동안 지진이 없었던 곳이었다.[* 아무리 지진이 잦은 일본일지라도 지역별로 지진 빈도가 크게 다르다. 예를 들면 도쿄에 사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두번 꼴로 경미한 지진을 느끼면서 살지만 오사카에 사는 사람은 일년에 한 번 겪을까 말까이다. 당장 [[수도직하지진]] 문서를 보면 100년 전후로 규모 7과 8짜리가 번갈아가며 간토를 뒤흔들지만 오사카는 2018년의 규모 5.5~6.1의 지진이 400여년 만에 발생한 최대 규모 지진이라고 한다. 이는 도쿄와 오사카의 판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장 두 도시는 위치한 판이 다르다.(도쿄는 태평양판, 필리핀판, 유라시아판, 오호츠크판이 위치하고 있고 오사카는 아무르판, 필리핀판이 위치해 있다) 정리하자면 일본은 전국이 지진 다발지대이자 지진 위험지대지만 지역마다 그 위험성이 또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진이 일어난 고베는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는 지진에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발생 시간이 오전 5시 46분, 즉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대라서 피해가 더더욱 커지는 것에 한 몫 했다.] [[내진]] 기준의 강화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 [[한신고속도로 고베선]] 고가가 옆으로 쓰러진 이유는 내진기준이 강화되기 전의 구조물이었기 때문이다. [[한신고속도로 고베선|한신고속도로의 고베 구간]]은 1969년 8월 1일에 완공되었는데 이때의 [[내진설계]] 기준은 고베 대지진과 같은 큰 규모의 지진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것 때문에 고가도로를 지탱하는 기둥의 철근이 지면에서 1.5m 높이까지만 올라와 있었고 지진 때 이 철근이 끝나는 부분이 부러지듯이 꺾여서 무너졌다. 당시 [[간사이]] 지방은 [[재일 한국-조선인]]만 35만 명에 달할 정도로 한국인 수가 많은 지역이었으며 특히 고베에는 8만 7천 명의 동포가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피해자도 많아 유학생, 재일동포 등이 100여 명 이상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당해 한국 입장에서도 큰 사건 중 하나였고 언론에서 비교적 상세히 보도하였다. 당시 방송 보도를 보려면 [[https://news.kbs.co.kr/vod/program.do?bcd=0001&ref=pGnb#19950117&1|KBS]] 및 [[https://imnews.imbc.com/replay/1995/nwdesk/2116521_30703.html|MBC]] 방송분을 참고할 것. MBC의 경우 해당 보도에는 안 나오지만 당시 주말 MBC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정동영]]이 고베 현지로 급파되어 소식을 전했고 당시 도쿄 특파원이 훗날 MBC 사장이 되는 [[김재철(언론인)|김재철]]이었다. KBS 측에선 유균[* 1973년 중앙일보에 입사 후 언론인 생활을 시작해 1985년부터 KBS로 옮겨 도쿄특파원 외에 보도국 외신부 차장, 정치부 차장, 해설주간, <일요진단> MC, 보도국장 등을 역임했다. 2005년부터 3년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원장을 역임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431194|중앙일보 기사]])] 도쿄특파원, [[박영환]] 기자 등이 현지 소식을 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